본문 바로가기
소설

이겨레 - 독사 (獨死)

by 겨 레 2020. 8. 29.

 

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1948)

 

 

 

 

독사 (獨死)

이겨레

 

 

※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자살에 대한 언급 및 묘사가 나옵니다.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으나 민감한 소재인 만큼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1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나이 지긋한 여자가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있었다. 여자가 보고 있는 그림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로, 여자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그림이었다. 여자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수차례 본 그림인데도 여자는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돌아가 그 그림을 한번 더 보고는 전시관에서 나왔다. 미술관에서 나올 때 여자의 표정은 긴장되어 보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느긋해 보였다. 여자는 오늘 하루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예감이 좋았다. 여자는 계획 세우기를 좋아해서 언제나 자신이 생각해 놓은대로 하루를 보냈다.

 

  여자는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여자에게 칸트보다도 더 지독하다며 놀렸을 정도로 여자는 자신의 짜놓은 일과를 철두철미하게 지켰다. 언제부터 그런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그는 하는 일이 무엇이건 간에 항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만을 했다. 수많은 상황을 겪어 보면서 여자는 더욱 유연하게 제 계획을 수정하면서도 자신이 안정감을 잃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여자가 직장인이던 시절의 일과를 잠깐 들여다보도록 하자. 여자는 오전 5시 30분에 알람이 울리기가 무섭게 일어나 잠을 깰 틈도 없이 곧바로 씻었고, 녹차 맛이 나는 초콜릿 바 하나를 먹으면서 출근했다. 출근길에는 언제나 책을 읽었다. 인파를 피해 오후 1시 30분에 점심을 먹었고 식사 시간은 절대로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혹시라도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온 동료들이 식사시간에 질질 끄는 듯하다 싶으면 얼른 돌아가자고 재촉하거나 먼저 돌아갔다. 업무가 끝나고 나면 집으로 곧장 돌아가거나 가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한달에 한두 번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를 제외하면 퇴근하기가 무섭게 곧장 집으로 돌아가 그만의 시간을 즐겼다. 일을 할 때는 장기적으로 달려야 성과를 볼 수 있는 업무도 미리 걱정하면서 계획을 짜야 직성이 풀렸다. 만에 하나라도 이를 망치는 일이 생기면 여자는 극도로 예민해져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들들 볶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게끔 만들어야만 했다. 이런 생활은 여자가 은퇴할 때까지 계속 반복되었다. 혹자는 그의 이런 점을 두고 참 빡빡하게 산다며 혀를 차기도 했지만 보통은 그의 완벽주의자다운 기질에 감탄하곤 했다. 여자는 자신이 정한 선을 남들이 함부로 넘지만 않는다면 대체로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성격이 나름대로 여자가 능력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여자는 때때로 변수 하나라도 발생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이 혹시 이롭지 못한 건 아닐까 걱정하다가도 이내 만족하곤 했다.

 

  오늘 여자의 계획은 그가 마지막으로 세운 계획이 될 것이었다. 이 계획에는 가까운 지인들과 마지막으로 한 번씩 만나고 이렇게 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보는 것도 포함되었다. 지인들은 이미 지난주에 모두 만나서 식사를 대접했고 미술관에도 이제 다녀왔으니 집에 돌아온 뒤의 일정만 남아 있었다. 여자는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읽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볼 계획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변호사에게 쓴 편지를 서랍에서 꺼낼 것이다. 편지에는 여자의 장례식을 어떻게 진행하고 유산은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여자에겐 남은 가족이 없었다) 적어 두었다. 여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모두가 충격을 받을 것이니 이 모든 일이 자신이 불행해서 벌어진 건 결코 아니니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죽음에 대한 그의 견해도 모두 편지에 썼다. 그 편지를 침대 옆 탁자에 놓은 뒤에 여자는 수면제 여러 알을 먹고 아주 깊이 잠들 것이었다.

 

 

2

 

 

  완벽주의 기질이 다분한 여자에겐 인생도 완벽히 흘러가야 마땅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자는 어릴 때부터 줄곧 ‘완벽한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줄곧 성찰하곤 했다. 조금 더 머리가 커졌을 때 여자는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지만 치밀하게만 생활하면 그나마도 그 불완전함을 최소화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졌다. 하지만 아무리 빈틈없이 살아도 죽음이란 것은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것처럼 보여 여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자는 죽음이 '갑자기 눈을 감는' 게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다가 결국 목숨이 끊어지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여자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그때 열 살이었던 여자는 장례를 마치고 나서 어른들이 속삭이듯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고 할아버지와 여자의 부모님, 삼촌들과 사촌들만 집에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임종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던 순간에 대해 회상하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텅 빈 나무관 속에서 헛나오는 바람소리처럼 쉬어 있었다.

 

  "자려고 눕기만 하면 자꾸 무어라 이상한 말을 중얼거려서...... 덜컥 겁이 나는 거야...... 왜 그러는 거냐 물으면 또 조용해져...... 한번은 또 숨소리가 이상한 것 같아 보니 눈을 뒤집고 있어서...... 어디가 아픈 거냐 물어도 말을 않고...... 같이 산책을 나갔는데...... 가는 동안에도 너무 거동을 뻣뻣한데......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걸 괜한 걱정이다 싶었어...... 무서워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어......"

 

  여자는 할머니가 그처럼 돌아가셨다는 것에 충격받았다. 사람이 죽을 때는 딱 눈을 감고 심장이 멈추고 호흡을 멈추면서 잠들듯 죽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처럼 정정하셨던 할머니가 며칠 동안 몸부림치고 서서히 굳어갔다는 사실은 여자에게 죽음이 생각보다 훨씬 힘든 것이라는 것을 일깨웠다. 하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면 몸의 모든 기능이 멈춰 버리겠나. 어린 시절의 여자에겐 무서운 것들이 많았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들은 점차 너무나도 하찮아서 두려워할 까닭조차 기억해내기 어려운 것들로 변했지만,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공포만큼은 떨칠 수 없었다. 오히려 여자가 자라나면서 이룬 것들이 많아질수록 그 공포는 더욱 강렬해졌다. 아무리 여자가 똑똑해도, 건강해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일을 침착하게 해도, 죽는 날이 가까워지면 버둥거리다가 죽고 말 것이다. 자신이 정확히 언제 죽을지 알지도 못한 채. 그 날이 닥치면 여자가 손을 써보기엔 그의 몸뚱이가 너무 낡아버려 모든 게 늦고 말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언제 죽게 될지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언젠가 여자는 자신이 죽음에 대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제 의지로 죽는 것은 빈틈없는 삶을 바라는 여자에게 걸맞은 죽음이었다. 자신의 삶이 예전만큼 유의미하게 굴러가지 않고 일상이 점점 무료해질 때, 그리고 몸이 이전만큼 가볍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오면 여자는 스스로 죽기로 결심했다. 그런 결심을 하는 날이 오면 죽음을 맞기 전 자신이 최대한 미련 없이 만족할 만한 하루를 보낼 계획이었다. 결정을 내린 뒤로 여자는 시름을 덜 수 있었다. 언제 올지, 정말로 오기는 할지 늘 궁금했던 그 날이 최근 다가왔다.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어 좋았지만 느긋함조차 게으름으로 치부하고 견디질 못하는 여자는 차츰 그 어떤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나날들이 물렸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에 재미를 붙여 봐도 즐거움은 잠깐 뿐 여자에게 일하던 시절만큼의 성취감을 안겨주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몸이 급격히 약해지는 걸 느꼈다. 운동할 겸 산책 삼아 매일 나가던 공원에도 한동안 가지를 못했다. 빠른 걸음걸이에만 익숙했던 여자는 갈수록 느려지는 제 몸뚱이가 답답했다. 한동안 소파에 누워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긴 채 시간을 보내던 여자는 부쩍 가늘어진 자신의 두 다리를 바라보다 때가 왔다는 걸 실감했다.

 

  그때부터 쭉 편지를, 그러니까 유언장을 썼고, 다 쓰고 난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아끼는 옷을 입었다. 여자는 미술관 문이 여는 시간에 맞춰 외출했다. 관절 마디마디가 쑤셨던 탓에 출발 전에 진통제를 몇 알 먹어야 했다. 계획이 있으니 평온하리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최후를 맞는 건 많이 떨렸다. 정말로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다. 미술관에서 여자는 평소보다 더욱 집요하게 작품들을 감상하고 차근차근 뜯어보았다.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쳤기 때문에 천천히 쉬어가야 했다. 너무 꾸물거리면 나머지 일들을 모두 마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시간도 중간중간 확인했다. 계획이 조금도 흐트러져서는 안 되었다. 그랬다가는 너무 불안해져서 결국 오늘 죽지 않기로 마음을 먹게 될 것이다. 예정된 일을 자꾸 미루는 건 좋지 않았다. 다른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죽기를 계속 미루게 되면 여자가 원치 않은 순간에 정말로 죽음이 찾아와서 모든 걸 망칠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미술관 관람은 무사히 진행되었고 여자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첫 번째 일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안심했다. 이후의 일도 차분히만 진행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죽을 수 있으리라.

 

 

3

 

 

  미술관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다녀온 덕분에 아직은 나머지 일들을 여유로이 마칠 수 있을 듯했다. 사실 그 또한 여자가 계획을 세우면서 염두에 두었던 상황이었다. 모든 건 밤 10시 전에 마쳐야 했다. 늘그막에 여자는 새벽에 일어났고 밤 10시에 잠들었다. 그 이전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고 그 이후까지는 버틸 체력이 없어서 최후의 잠자리도 10시 무렵에 맞을 생각이었다. 시간 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첫 번째 일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는 자신감이 붙어서 그다지 떨리지 않았다.

 

  여자는 집에 돌아온 뒤 컴퓨터를 켜고는 음악 폴더를 뒤적거렸다. 여자가 제일 먼저 재생한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이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여러 장르를 즐겨 듣던 여자는 가끔 자신의 마지막 날에 어떤 음악을 들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베토벤의 교향곡 7번만큼 괜찮은 음악은 없는 듯했다. 그 곡은 여자의 어머니가 그를 가졌을 때 들었던 여러 클래식 음악들 중 하나였고, 여자가 대입 시험을 앞두었을 때 자주 들었던 음악이었다. 어딘가 처연하면서도 삶의 의지를 끝내 잃지 않겠다고 외치는 듯한 그 곡은 당시 여자가 시험을 앞두고 떨 때마다 힘이 되어 주었으며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여자가 또 한번의 큰 시험을 앞둔 고시생이 되었을 때에도 즐겨 듣는 음악이 되었다. 지금도 여자에게 베토벤의 선율은 죽음을 앞두고 마음을 차분히 할 시간을 주는 것만 같았다. 여자에겐 스스로 죽는 것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기 위한 행위였다.

 

  자신이 뱃속에서 처음 들었던 음악이 마지막으로 듣는 음악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묘했다. 어머니가 임산부였던 시절을 생각하다 보니 여자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자신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한때 부부였으며 여자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모두 잊고 뼛가루가 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제는 여자도 모든 기억을 지우고 사라질 때가 머지않았다. 그가 숨을 거두고 나면 이제 그 단란했던 세 식구들의 기억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그 사실이 여자를 쓸쓸하게 했다.

 

  여자는 애써 심란함을 떨치려고 몸을 일으켜 서재로 갔다. 그는 그동안 그가 좋아했던 책들을 빠르게 쭉 훑어보았다. 얇은 책이라면 몰라도 두꺼운 책들은 일일이 오늘 다 읽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 독서할 때보다 서두르기는 해도 여자는 책들을 보면서 다시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책들을 처음 읽던 순간들이 기억나자 여자의 머릿속은 다시 어지러워졌다.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사람의 생각과 기억은 모두 어디로 사라질까, 사리(舍利)가 되어 죽은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걸 간직할 수는 없는 걸까? 그 소중한 것들은 왜 일기장이나 사진에 밋밋하게 남아야만 하는 것인가? 여자는 서글펐다. 여자에게는 추억조차도 완벽히 보존하고픈 존재였다. 그래서 일기에 모든 일을 세세히 남기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사진을 찍거나 증거물로 남길 만한 물건을 보관했다. 그러나 추억은 아무리 애를 써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때의 행복했던 순간은 떠올릴 수 있어도 그 고유한 행복은 느낄 없었다. 여자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제 그때를 다시는 경험할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인한 공허감뿐이었다.

 

  여자는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를 회상했다. 그때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 <두 도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가 그대로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 친구들이 혀를 찼다. 여자는 소설에 나오는 시드니 카턴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여자가 생각하기에 카턴은 비뚤어지지 않은 남성상의 표본이었다. 그는 천성이 우울한 사람이었지만 어린아이들에겐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사랑하는 여인의 남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책을 다 읽었던 날은 폭우가 내리던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여자는 시험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들과의 약속도 마다하고 흙탕물을 마구 튀기며 집으로 뛰어가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열정이 무색하리만치 카턴이 허망하게 떠나 버린 게 왠지 야속하게 느껴져서 여자는 책을 다 읽고는 한참을 웅크리고 누워서 빗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우울감에 젖은 채 보낸 하루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는 그날을 무척 행복했던 추억 중 하나로 기억하게 되었다.

 

  몇 년 뒤 여자는 <두 도시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그때 여자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였고 과거 느낀 즐거움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여자는 오래전의 행복했던 날을 떠올리고는 책을 집어들었다. 소설은 여자가 처음 읽었을 때보다도 더 흥미진진했다. 이전에는 놓쳤던 세세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카턴의 죽음은 이제 단순 슬픈 것이 아니라 고귀한 것으로 여겨졌다. 책을 다 읽은 뒤 여자는 카턴처럼 자신도 한결 숭고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슬펐다. 여자는 더는 열일곱 살 때의 여자가 아니었다. 여자의 둥근 본성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세부적으로 따지고 보면 그때처럼 생각하고 느끼기에 그는 더 늙고 말았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보다 성숙할 수는 있어도 똑같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늙었다. 이번에는 카턴이 루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과 그가 다네이 대신 죽기로 결심하는 장면, 최후를 맞는 장면만을 다시 읽었지만 두번째로 소설을 읽었을 때와는 또 느낌이 새로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 읽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알고 있는 카턴의 모습은 더욱 가슴을 뛰게 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여기던 시절의 여자는 카턴을 그저 이상형으로만 여겼지만 지금 죽음을 직면한 여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마지막 날들을 준비하는 카턴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카턴은 이제 여자의 동지였다. 얼핏 보기엔 비극적인 죽음도 실은 아주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고, 여자에게 카턴이 속삭이는 듯했다.

 

 

4

 

 

  여자는 서재 한켠에 꽂아둔 수첩 한 권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꺼냈다. 여자가 좋아하는 글귀들을 짤막하게 옮겨적은 수첩이었다. 그는 "고통 없이는 성취도 없다", "삶을 사랑하라" 따위의 명언들을 애써 찾아 읽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런 문구들을 경멸했다) 가끔 글을 읽다 보면 두고두고 생각이 나서 다시 삶을 추스르고 살아갈 의지를 북돋는 글귀를 발견하기도 했다. 여자의 가슴에 와닿는 것은 가리지 않고 모두 적어놨기 때문에 글귀 중에서는 불경이나 성경에서 나온 종교적인 글귀들도 제법 여럿 있었다. 여자는 그 수첩이 죽음을 앞둔 자신에게는 과연 삶을 추스르고 '그만 죽을' 의지를 북돋울지 궁금했다. 그는 지금까지 하루가 순조롭게 흘러가준 덕분에 안심하면서도 여전히 죽음이라는 게 가슴에 와닿지가 않아 무언가 찜찜했다.

 

  그렇다고 죽기를 차일피일 미뤄 때가 알아서 찾아오게 내버려둘 생각은 결코 없었다. 그는 고집이 세서 쉽게 결정을 바꾸는 일이 없었다. 지금이 여자가 가장 덜 초라하고 덜 불안해서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게 죽을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자도 사람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내기란 불가능하니 조금이나마 죽을 힘을 솟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여자는 수첩을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한 페이지에 멈춰 섰다. 그 장에는 <무문관>의 구절이 적혀 있었다.

 

 

  서암이 매일 자신을 불렀다. "주인아."

  그러고 자신이 대답하였다. "네."

  그러고 그가 덧붙였다. "늘 냉철하거라."

  다시 그가 대답했다. "네."

  "그러고 나서는 다른 이들에게 속지 마라." 그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 옆에는 키르케고르의 말이 적혀 있었다.

 

 

  이제야 명확히 알겠다. 가능한 상황은 두 가지다. 누구든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할 수 있다. 내 솔직한 의견이자 진심 어린 충고를 전하자면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후회한다. ...용기를 내면 안정된 발판을 잠시 동안 잃는다. 그러나 용기를 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

 

 

  여자는 <무문관>과 키르케고르를 번갈아서 몇 번이고 읽었다. 그 둘을 읽고 나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전적으로 기댈 수 없으며 자기 운명은 스스로 다스려야만 한다는 것이 여자의 믿음이었다. 이런 신념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니 여자에게 곧 닥칠 운명 역시 필연적인 일이었다. 여자는 냉철해져야 했고, 동시에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건 간에 (그 결과가 나쁘다는 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 일보직전일 것이다)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독서하는 동안 조금 무뎌졌던 여자의 눈빛은 다시 또렷해지면서 오늘 하루도 제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오늘의 목표가 결국은 죽음을 맞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무사히 해내는 것 또한 흐트러짐 없이 사는 것의 일부였다.

 

 

5

 

 

  오후 6시에 여자는 저녁 식사를 간단히 마쳤다. 애초에 그는 적게 먹는 편이었다. 죽기 전에 특별히 먹어야 할 음식이 있을까 궁리해 보았지만 그동안 먹는다는 행위나 음식이 여자의 인생에 그다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기에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식사 후에 여자는 차를 마시면서 영화를 볼 생각이었다. 영화도 좋아하는 작품이야 많았지만 딱 한 편, 죽기 전 그에게 평온함을 주기에 적합하다고 느껴지는 걸 볼 것이었다.

 

  <시네도키 뉴욕>과 <페르소나>는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기는 했어도 우울했다. <400번의 구타>도 마찬가지였다. 귀엽기는 해도 마지막 장면이 결국은 우리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여자의 기분을 처지게 할 것이 분명했다. 여자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와 <퐁네프의 연인>을 두고 한참 고민하다 직감적인 끌림에 따라 <퐁네프의 연인>을 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다음에야 여자는 자신의 선택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셸과 알렉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인생이 정말로 의도만큼 완벽했는지 의심하게 된 것이다. '사랑'이라던지 뭐 그런 문제들을 놓고 봤을 때 여자는 자신이 영 시원찮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다. 그가 소설 속 남자에게 반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여자는 젊었을 때 남들보다 많이 감성적인 편에 속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운명적인 '사랑'이 정말로 존재할 것이란 막연한 믿음과 달리 그는 굉장한 짝을 만나서 굉장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여자는 자기 삶을 흠집 없이 가꾸기에 바빠 시간이 없었던 데다가 완벽주의 기질 탓에 현실에게 깍듯이 무릎을 꿇어 주는 법을 잘 몰랐다 (그는 현실과 타협하게 되더라도 일단은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딱 한 번 운 좋게도 여자가 보기에 머릿속에 그린 모습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난 적은 있었다. 한동안은 행복했지만 언젠가부터 여자는 인간관계에서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게 만들려 애를 쓰는 게 지겨워졌다. 여자도 상대방도 소설 속의 납작한 연인들이 아니라 저마다의 생각이란 게 있는 존재들이었다. 여자가 보기에 볼썽사나운 일들이 상대의 기준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가 잦았다. 완벽함을 위해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메꾸는 것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까지 너그러이 포용해야 하는 것이 버거웠다. 게다가 상대방을 만난 뒤로 여자는 자신만을 위해 남겨둔 공간조차 침범당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여자는 한동안 다들 하는 '사랑'을 자신만 하지 않으면 비웃음거리가 될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의 인생에 앞으로 동반자를 데려오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다른 이들을 얼마든지 도와주거나 이해하면서 사랑을 베풀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여자가 자신의 영역 안에서도 베풀 수 있는 것이었고, 그밖의 남들이 흔히 '사랑'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일들은 여자의 영역을 상대방의 영역과 뒤섞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여자는 그런 걸 쉽사리 용납할 수 없었기에 홀로 남기로 했다. 어차피 누구나 살아가면서 무언가 한가지쯤은 포기하는 법이다. 여자의 경우에는 '사랑'이었다. '사랑'을 버리고 난 이후에는 홀가분해졌다.

 

  그러나 여자는 영화를 보면서 갑작스레 사랑이 있었다면 정말로 뭔가 좀 달라졌을지 의문에 빠지고 말았다. 나쁜 방향으로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여자가 떠올리는 것은 좋은 방향이었다. 여자의 성격이 훨씬 더 유들유들해졌을 수도 있었고 죽는 문제를 조금 더 무던하게 처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지나치게 꼼꼼한 일처리가 '사랑'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히스테리라고 지적당하는 일을 몇 번 겪었던 게 생각났다. 여자는 그런 경험을 몇 번 겪고는 사람들과 살갑게는 지내되 결코 귀찮은 소리를 들을 만큼 가깝게 지내지는 않게 되었다. 여자는 옛날에 있었던 불쾌한 일들이 떠오르자 짜증이 났다. 아무래도 '사랑'에 대한 영화는 보지 않는 게 나았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봤어야 했다. 그렇다고 중간에 영화를 꺼 버리는 것도 내키지는 않아서 그는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머지 하나를 더 보기로 했다. 영화는 8시 10에 끝날 것이고, 다음 영화는 90분짜리니 한 편 더 봐도 문제가 없었다.

 

  알렉스가 도시 곳곳에 붙은 미셸의 사진을 불태우는 장면을 보는 동안 여자는 키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렸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후회한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 여자는 새삼 그 말에 위안을 얻었다. 여자가 사랑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렸건 간에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들이 비웃을 것이 너무 두려웠던 나머지 그대로 가만 있었더라면 정말로 그 자신을 잃고 그 사람과 뒤엉킨 채 평생을 보냈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사랑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더라도 그 자신으로서 남을 수 있는 지금이 나았다.

 

  잠시 후 여자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봤다. 두 번째 선택에 대해선 후회가 없었다. 여자와 달리 불확실한 죽음이기는 했지만 클레오 역시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자는 카턴에게서 그랬듯 클레오에게도 동질감을 느꼈다. 클레오가 여자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화면이 어두워졌을 때 여자는 비로소 그가 오늘 영화를 보면서 갖길 원했던 평온함을 가졌다.

 

  9시 40분이었다. 여자는 할 일을 모두 마쳤다.

 

 

6

 

 

  마침내 때가 되었다.

 

  여자는 씻고 나서 서랍에서 편지를 꺼내며 하루를 돌이켜봤다. 성공적인 하루였다. 그러나 과거 여자는 해야 할 일들을 다 해내고도 이유모를 허무함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아까 봤던 영화 덕분에 많이 차분해졌지만 대망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오늘은 허무한가?

 

  여자는 탁상등을 켜고는 침대에 가만히 앉았다. 젊은 시절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여자는 대입에 한 차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처음 맛본 실패 때문에 잔뜩 의기소침해진 채 여자는 일년 동안 소속된 곳 없이 집에서 공부했다. 여자의 어머니는 오후마다 여자를 데리고 한 시간씩 산책을 나갔다. 여자는 돌아다니면서 어머니에게 온갖 것에 대해 투덜거렸다. 방금 지나간 사람의 걸음걸이가 너무 껄렁했다고, 동네에 나무가 너무 많아서 진딧물이 떨어질까 봐 짜증난다고, 자기 같은 인재를 못 알아본 학교가 너무 얄미워 죽겠다고. 어느 날 여자의 어머니가 그의 투정을 가만 들어주다가 말했다. 네가 나와 이렇게 함께 산책하면서 수다를 떨 날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느냐고. 여자는 어머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대학생만 되면 지금처럼 하루에 13시간씩 공부를 해야 할 일도 없을 텐데 그럴 리야 있겠느냐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굉장히 불행하며 그 날들을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대답에 피식 웃던 어머니가 자신을 철부지로 여기는 것 같아서 분했다.

 

  이듬해 여자는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 생활도 생각보다 많이 바빴던 탓에 여자는 매일 정신없이 지냈다. 공부하지 않을 때는 동기들과 어울리거나 다른 일들로 숨 가쁘게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는 다시 고시생이 되어서 바빴다. 그때는 학교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이 산책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는 회사 일로 또 바빴다. 여자는 자신이 어머니와 느긋하게 산책하며 대화를 나눈 지가 무척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머니의 말씀이 맞았음을 실감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인데도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걷던 시간은 왠지 그리웠다.

 

  단순 그때만이 아니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이라 생각하고 무시했던 날들은 여자가 그 순간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자연히 소중한 추억이 되어 여자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전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날들, 하다못해 허무함에 젖은 채 잠들었던 날들조차 어느새 여자가 완벽하다 여겼던 날들 못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뇌리에 남아 있었다. 훗날에도 살아 있었다면 여자는 오늘 또한 좋은 날로 기억했을 것이다.

 

  그동안 알면서도 안다는 걸 몰랐던 사실을 새삼 깨닫자 여자는 생전 처음으로 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긴 세월 동안 그는 흐트러짐을 경계하느라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입에 물잔을 가져다 대면서 여자는 처음으로 삶에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꼈다. 수많은 성취를 이루고도 이만큼 만족스러운 적은 없었다. 그는 행복했다. 그날의 행복은 그제껏 그가 느껴본 행복 중 가장 부드러운 행복이었다.

 

  여자는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이겨레 |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설가 이상의 팬이 되면서 <월간 권태>를 처음으로 구상했습니다. 덕업일치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면서도 그걸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세상 뛰어 넘기'를 2010년부터 운영하는 중입니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겨레 - 독사 (獨死)  (0) 2020.08.29
전여운 - 님이의 창문 밖에서  (0) 2020.08.29
전여운 - 그 가정의 방문 (하)  (0) 2020.07.16
전여운 - 그 가정의 방문 (상)  (0) 2020.07.15
이겨레-거짓말 탐지기  (0) 2020.06.30
김수빈 - 소화의 과정  (0) 2020.05.29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