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월간 마틴 클럽

by 월간_권태 2021. 9. 16.

월간 마틴 클럽

(월간권태 편집장들의 말말말★)

월간 권태 2호의 가장 마지막 글

(특집으로 실린 글이었지만 꽤나 흥미롭기 때문에 홈페이지에도 올리기로 결정했다)

 

 

‘세 명이 모여서 잡지를 만들고, 심지어 두 권이나 내다니, 필시 저 셋은 어렸을 때부터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운명적인 공동체임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하고 계실 누군가를 위해 말씀드리자면, 월간 권태 클럽은 정말 ‘월간 권태’ 잡지 발행을 목적으로 2020년도에 만들어진 인위적이고 비교적 최신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20년도 이들의 모임들을 분석해보면 전부 ‘월간 권태’의 발행을 안건으로 회의하고 또 회의했고, 심지어 술 마시는 자리에서도 이들은 작품과 잡지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이야기했다. 접점도 별로 없어 보이고, 친목질도 별로 하지 않았던 이 셋에게서 정말 우연한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바로 다들 ‘닥터마틴’ 신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이 공통점이 소중했으면, ‘월간 권태 2호’의 마지막 글을 ‘월간 권태’ 편집장들의 ‘닥터마틴’에 얽힌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닥터마틴에서 광고비를 받았다거나, 닥터마틴과 개인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님을 밝힌다. 물론 닥터마틴 광고 의뢰가 들어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응할 것이다)

 

 

 

 

 

전여운 - 닥터마틴 1461 Red Stitch BLACK SMOOTH

놀랍게도 신발만을 찍은 사진이 없어 신발이 나온 사진에서 발만 잘라왔다. 현재는 검정색 끈이 끼워져 있다.

 

유년기에 무언가를 얻어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당위성과 관련이 깊었다.

가령 그런 것들이 있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유 없이 가지고 싶은 것들. 유년기에 그런 것들은 아이팟 터치(그 시대에는 사람들은 음악을 듣기 위해 MP3라는 기계를 썼고, 아이팟 터치는 애플사에서 나온 MP3였다), 브랜드 슬리퍼, 블랙베리 스마트폰, 그리고 닥터마틴 워커 같은 것이었다. 부모님은 내 생활이나 공부에 필요한 것이라면 대부분 사주셨지만, 이런 물건들은 딱히 사 주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가지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 다른 친구들이 이유로 대는, 성적 향상과 같은 일차원적인 조건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실제로 성적을 올리겠다는 조건으로 핸드폰을 얻으려 했던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성적이 오르는 것은 네게 좋은 일이지 엄마 아빠에게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에, 핸드폰을 사 줄 이유는 없다’는 논리에 설득당해 핸드폰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난 저 물건들을 사야만 하는 당위성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나는 저 물건들 중 일부는 얻었고, 일부는 얻지 못했다. 아이팟 터치의 경우 엄마가 선심을 써서 제안한 한 책장의 영문 도서를 다 읽는 조건으로 살 수 있었다. 브랜드 슬리퍼의 경우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껴 둔 용돈으로 살 수 있었고, 블랙베리 스마트폰은 갖지 못했지만, 기존에 쓰던 핸드폰이 망가졌기 때문에 다른 기종의 스마트폰을 얻는 것으로 타협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난 10대가 가기 전에 닥터마틴 워커의 당위성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신발은 끝내 살 수 없었다. 난 (역시 구매를 위해 당위성을 수없이 증명해야 했던) 브랜드 운동화에 만족하며 친한 친구의 검은 바탕에 빨간 끈이 앙증맞은 워커를 부러워하곤 했다.

 

스물한 살에 마주한 삶의 메커니즘은 이전과는 퍽 달랐다. 나는 막 대학에 입학했고, 홀로 서울에서 생활을 영위해야 했기 때문에 운용할 수 있는 화폐의 단위는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그때부터는 당위성을 따지지 않고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가 아주 넓어졌고, 나는 우연히 닥터마틴을 다시 만났다. 입학한 학교의 커뮤니티에는 중고장터 게시판이 있었고, 나는 그 게시판을 종종 보곤 했는데 어느 날 그 게시판에 닥터마틴을 중고로 파는 게시물이 올라온 것이다. 뚱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넘기던 난 그 신발의 사진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앙증맞은 빨간 끈의 닥터마틴 워커, 230사이즈, 적절한 가격(가격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난 당장 그 신발을 사겠다고 연락을 했고, 며칠 후 초면이지만 오래된 친구 같은 그 신발을 만날 수 있었다.

 

갖고 싶었던 신발을 늦게 산 것에 대해 불만은 조금도 없다. 물론 유년기에는 탐탁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지만 부모님이 가르쳐 주신 소비관은 아주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 시기 나는 손을 휘저어 아무거나 잡는 것보다는, 꼭 필요한 물건을 위해서만 손을 뻗어 쟁취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 가르침은 이후 시장경제 안에서의 내 생활에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만 그 이후부터 나는 어른들이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장난감이나 물건을 성인이 되어 다시 구입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분명 나는 나이를 열 살은 더 먹었지만, 오랫동안 가지고 싶던 물건 앞에서는 다시 어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신발의 포장을 뜯고 신어보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십여 년 전 새 신발을 사고 느꼈던 기쁨 그 자체였다. 오히려 어린 시절의 아쉬움이 풀어졌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노트에 글을 쓰고, 신발장에는 운동화만 가득했던 난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사용해 글을 쓰고, 구두를 여러 켤레 가진 어른이 되었다. 이젠 앙증맞은 닥터마틴 말고 다른 구두도 많이 생긴 탓에 닥터마틴이 세상에 나오는 날이 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그 신발을 볼 때면 그 신발을 얻기 위해 고심했던 어린 모습의 아련함이 떠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신어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해하겠지만) 그 신발의 무게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발은 어린 시절처럼 사뿐하다. 고작 중고 신발 한 켤레로 어린 날을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이겨레 – 뭔지는 모르겠지만 멋있는 닥터마틴 (제품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

성질머리 급한 사람답게 나는 걸음이 빠르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권태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학교에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걷는 게 너무 귀찮았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10분 내외에 불과했기 때문에 걷는 것 외에는 학교에 갈 방법이 없었는데, 그 짧은 시간조차 학교 따위에 가는 데 써야 한다는 게 미칠 듯이 귀찮아서 무릎을 꿇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래서 빨리 걷기 시작했다. 일 분이라도 그 귀찮은 순간을 단축해 보려고.

그 뒤로 사람들은 내 걸음걸이에 맞춰 걷지를 못했다. 반장이 되어 소풍을 갔을 때는 다른 친구들을 인솔해서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나지막이 겨레야, 겨레야! 하는 소리가 뒤편에서 들리기에 뒤돌아보니 아이들이 한참 뒤에서 나를 쫓아 달려오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집에 빨리 가려고 허둥대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을 심하게 삔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이 있었던 친구는 나에게 어떻게 다리를 다치고도 그렇게 빨리 걸을 수 있냐며 한참 앞장서서 가는 나를 쫓아 달려왔다. 지금도 나는 속도를 제어해 줄 사람 없이 혼자 떠돌고 돌아오면 다리가 퉁퉁 붓고 아프다. 다른 사람의 느려터짐을 견딜 수가 없어서 여럿이서 같이 다니는 것도 질색한다.

 

마틴 박사는 나의 급해 빠진 파워 워킹병을 치료해 주었다.

 

마틴 박사와 동행하면 내 발가락에는 물집이 잡히고 뒤꿈치엔 굳은살이 생긴다. 절뚝거리면서 옆 사람에게 “제발 조금만 천천히 걸어줘!”라고 애원하게 된다. 어려서 <빨간 구두>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카렌이 진짜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다. 닥터 마틴을 신을 때면 카렌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예뻐서 포기할 수가 없지만, 신고 나면 괴로운 신발....... 누군가에게 부탁해 내 다리를 자른다면, 아마도 내 두 발은 성큼성큼 걸어 삽시간에 시야를 벗어나겠지.

이겨레가 느려 터져 답답하다며 당신을 팽개치고 간 적이 있나요? 당장 그에게 연락을 걸어 약속을 잡으세요. 그리고 마틴 박사와 함께 오라고 당부하세요. 뒤뚱대는 이겨레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김수빈 – 닥터마틴 크렌포드

 

월간 권태 편집장 중에서 닥터마틴 신발을 가장 늦게 구매하였다. 때는 아마 2020년 초가을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닥터마틴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사실 월간 권태 편집장 이겨레가 구매한 것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고, 전여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럼 나도 사야지!’하고 따라 샀던 것이다. 신발은 나이키 운동화밖에는 구매 욕구가 없었던 내가 (길들일 때 피 칠갑을 하게 된다는, 악명 높지만 그만큼 멋있는) 닥터마틴 구두를 구매하게 된 계기는, 그즈음 ‘열일한’ 나의 발에 무언가 멋진 선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20년 여름, 나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돈을 버는 중’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교환학생에서 예정보다 빨리 돌아오게 된 이후, 큰 상실감에 빠져 집에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하던 중, 문득 이렇게 시간이 남아돌 때 돈이라도 벌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아르바이트(들)이었고, 그 시작은 무려 하루 3개로 창대했다. 우선 아침 7시 50분부터 이대 부속 초등학교 앞에서 ‘녹색 학부모’ 형광 조끼를 입고 ‘노란 깃발’을 들며 40분 동안 차량 통제 알바를 했다. 여름 장마철이라서 가끔 아침 댓바람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릴 때가 많았는데, 한 손에는 깃발,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교통 통제를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비를 쫄딱 맞고 나면, 아침 9시부터 이화여대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근무하였다. 여타 근로 장학생의 업무와는 달리,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모든 건물들을 돌아다니면서 ‘장애 학생 복지시설 평가’를 하는 야외근무였다. 건물들을 돌아다니면서 휠체어가 잘 지나다닐 수 있는 출입문인지, 화장실에는 장애 학생 용 화장실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점수를 매기는 근무였는데, 오후 3시까지였다. 그리고 오후 4시에 홍제역에 있는 보습학원에 가서 영어 강사 아르바이트를 오후 9시까지 했다. 주위로부터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느냐, 돈에 미친 사람 같다 등의 말들을 들었는데, 나 역시도 별 반박은 하지 못했다. 그냥 할 만해,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사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 하며 실실 웃을 뿐이었다. 정말 12시간이 넘는 근무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여기저기 이동하다 보니 하루에 걷는 걸음 수는 만 오천 보를 훌쩍 넘었다.

 

이런 스케줄을 버텨내다가 결국 2주 후 나는 내 인생 최대의 몸살에 걸리게 된다. 몸살은 오기 직전부터 강렬한 예고를 날렸다. 아, 한동안 좀 아프겠는데? 라는 공포의 예감이 찾아왔고, 기가 막히게 바로 다음 날부터 근육통, 두통을 수반한 엄청난 몸살이 찾아왔다. 몸이 너무 아픈 나머지 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어깨 통증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에 잠에 들 수도 없었다. 누워도 아파, 일어나도 아파, 그럼 어쩌라는 건지. 참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맞춰줘야 하는 게 많은 까다로운 존재인지를 실감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걸 찌뿌둥해 하기에, 온종일 밖에서 쏘다니게 해줬더니 이번에는 몸살을 일으켜?

 

다행히도 몸살은 이틀 정도 앓다가 깨끗이 나았다. 아직 그 살인적인 알바 스케줄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12시간 근무를 해나갔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후 차량 통제 아르바이트와 장애 학생 지원센터의 근로 장학생 근무가 끝났을 때, 내 통장으로는 두 달 치의 아르바이트 비용이 한꺼번에 입금되었다. 매번 용돈만 들어오는 통장에 추가 수입이 생기니까 꽤 신이 났다.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것들을 하나씩 사들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즐기다 보니 이 주도 채 안 되어서 그 알바비가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 달 동안 매일매일 몇 시간씩 주구장창 일했는데, 몸살이 올 정도로 힘든 야외 근무였는데, 최저시급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심지어 세금까지 떼고 들어오다니,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처음 통장에 입금되었을 때의 설렘과 흥분은 어느새 다 사라지고, 괜히 적어 보이는 알바비를 보며 나는 그저 억울하고 뾰로통할 뿐이었다. 뭘 사야 이 억울한 감정을 해소해줄까, 뭘 사야 내 피 같은 돈을 잘 소비를 하는 걸까 고민하느라 사려 했던 것도 못 사게 되고 고민에만 잠기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이겨레의 닥터마틴 구매 소식을 듣게 되었고, 새 닥터마틴을 길들이느라 발꿈치에 밴드를 붙이는 이겨레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나도 저 신발을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란 스티치가 상당히 예뻐 보였고, 무엇보다 멋은 있지만, 발의 편안함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제 다시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발을 혹사하며 돈을 벌러 다니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지, 저 불편하고 갑갑한 신발을 신으면 이제 그런 미친 짓은 하지 못할 거야.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간 마틴 클럽  (0) 2021.09.16
따릉이(2020.4.30)  (0) 2021.07.20
월간 권태 2호 비하인드 -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0) 2021.03.18
보류됨의 즐거움에 대해서  (0) 2020.07.08
그 날의 지문은  (0) 2020.07.08
세탁기에 관한 원초적 분노  (0) 2020.06.3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