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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 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 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 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懶怠)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火傷)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 평상(平床)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以上) 이 좁은 방 것이나 우주(宇宙)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大小)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잇을 뿐이다.

-이상, <권태>

 

 


 

 

이상의 수필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듯 권태는 우리에게 무력감 혹은 무료함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그러나 쉴새없이 바쁜 현실 속에서 조금이라도 '무력함'을 느끼면 나태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낙오되어야만 하는 이 사회에서, 어쩌면 권태란 우리에게 진정한 나를 돌아보고 세상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경험 아닐까요?

<월간 권태>의 운영진들은 사유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허세로 치부하는 세상에서 권태의 필요성을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권태인(倦怠人)'의 관점에서 세상을 관찰하고 이를 거리낌 없이 표현할 것입니다. 그리고 <월간 권태>의 독자들 역시 우리와 함께 권태의 시간을 가져 주기를 바랍니다.

 

2020. 05. 06

<월간 권태> 편집장 이겨레

 

 

 


 

 

 ‘권태’, ‘잉여’, ‘게으름’이라는 단어 나열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필시 빠져나올 수 없는 사회의 쳇바퀴 속에서, 이미 지쳤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倦怠人’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물구나무 서보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젊음과 청춘, 그들의 생각할 자유에 고하는 글들을 시작하려 합니다.
 

2020. 05. 06

<월간 권태> 편집장 김수빈

 

 

 


 

 

<월간 권태>를 시작하면서-
가끔은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온 세상이 태풍이 몰아치듯 변하고 발전해 가는데 나 혼자만 잔잔한 태풍의 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생각. 권태에는 평온함에 내재된, 곧 몰아닥칠 불안을 안고 바라본 세상의 모습을 담고 싶습니다. 불안정하고 덜 여문, 하지만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권태로운 시간의 렌즈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 시선 속에서 저도, 독자분들도 잊지 못할 무언가를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0. 05. 06

<월간 권태> 편집장 전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