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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레4

이겨레 - 독사 (獨死) 독사 (獨死) 이겨레 ※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자살에 대한 언급 및 묘사가 나옵니다.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으나 민감한 소재인 만큼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1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나이 지긋한 여자가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있었다. 여자가 보고 있는 그림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로, 여자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그림이었다. 여자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수차례 본 그림인데도 여자는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돌아가 그 그림을 한번 더 보고는 전시관에서 나왔다. 미술관에서 나올 때 여자의 표정은 긴장되어 보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느긋해 보였다. 여자는 오늘 하루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예감이 좋았다. 여자는 계획 세우기를 좋아해서 언제나 자신이 생각해 놓은대로 하루를 보냈다.. 2020. 8. 29.
이겨레 - 올랜도와 글쓰기에 관하여 올랜도와 글쓰기에 관하여 ─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를 읽고 이겨레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는 이미 틸다 스윈튼 주연의 영화나 여러 논문에서 페미니즘을 중점으로 하여 여러 차례 분석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에서 올랜도가 글 쓰는 것에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 이를테면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일단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다면 실은 글쓰기를 싫어하는 게 아닌가? 막상 구상을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즐겁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그 즐거운 와중에도 나는 내 옆에서 누군가가 내가 쓰는 글을 훔쳐보면서 비웃는 것만 같아 기가 죽는다.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난 후에는 근거 .. 2020. 8. 1.
이겨레-거짓말 탐지기 거짓말 탐지기 이겨레 그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연히 매일이 불안했고 그만큼 매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활기찼다. 그들은 매일 머리채라도 잡혔다 풀려난 것처럼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얼굴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채 매일 밤늦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 모두 스트레스성 장염을 자주 앓았던 탓에, 살이 쪄서 걱정이라는 다른 고3들과는 다르게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어른들은 마치 성전에 출전할 기사들을 보는 양 그들을 대접하고 볼때마다 안쓰러워 혀를 찼다. 한번은 그들 중 한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그를 보더니 “학생, 여기 앉아요. 고생도 많지!” 하면서 자리를 양보해줄 정도였다. 그는 바로 다음 역에서 내릴 예정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이 지긋한 할머니의 자리에 .. 2020. 6. 30.
이겨레 - 상어의 작은 세계 상어의 작은 세계 이겨레 이재민의 가장 큰 불행은 본인의 불행을 떳떳하게 여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문화가 있는 날인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다. 때마침 재민은 공강이라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고, 그의 친구 셋도 시간이 맞았다. 재민의 친구들은 그에게 만나서 아쿠아리움에 가자고 연락을 했다.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도 재민은 요를 개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신이 정말로 불행한 게 맞는 것인지를 곱씹는 중이었다. 재민은 잠깐 망설이다가 곧 외출할 채비를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재민은 외출하기를 꺼렸는데, 집을 나서기만 하면 문밖에서 재민을 기다리던 근심이 득달같이 그의 어깨 위를 올라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쿠아리움에 가자는 말을 들은 순간 재민은 열대어들이 몹시 보고 싶어져 친구들을 뿌.. 2020. 5. 19.